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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띠띠사 6 - 1945 해방과 1946 남한민중항쟁사
이름: 박대환


등록일: 2009-09-07 18:06
조회수: 1199


박정희.
1917년 11월 14일 구미시 상모동에서 태어남.
5남 2녀중 막내.
동희,무희,귀희(여),상희,한생,재희(여),정희.

일제시대에 총독부는 한국인의 황국신민화에 앞장설 교사를 양성하였는데, 그 교사 양성기관으로 유명한 3대 사범학교가 있었으니 평양사범, 경성사범, 대구사범이 그것이라, 이들은 당대 조선 최고의 학벌이 되었다. 박정희는 그 중 대구사범 4기생으로 당대 최고 엘리트였다.

1937년 20세 되던 해에 문경서부공립심상소학교 훈도(訓導)로 발령되어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3년 근무하다가 1940년에 교사직을 끝낸다.
현재 극렬한 박정희 추종자들은 당시 학교장의 부당한 처사에 항거하여 스스로 교사직을 파했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같은 해 4월 4일에 위만주국의 신장육군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민족 말살 정책 및 조선 병참기지화에 혈안이 되어 있던 때였다.

2년 교육후 240명 중 수석을 차지해 최우수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유학생대에 편입되어 다시 2년 교육을 받는다.

관동군 635부대에 3개월간 견습과정을 마치고 1944년 7월 1일 27세의 나이로 황국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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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군도 있고 여전히 항일 무장항쟁 세력은 존재하였으나, 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엔 만주등지의 독자적 무장항쟁보다는 중국의 공산당과 국민당에 편입되어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이 대세였고, 이후 자유시참변등으로 광복군에 흡수되지 않은 여러 독립군들은 와해된다. (한 때 관동군들을 떨게 했던 홍범도는 자유시참변 이후 소련에 의해 무장해제당하고 카자흐스탄의 극장 매표소 할아범으로 생을 마감한다.)

박정희의 일본군사학교 입교는 이러한 전체적 배경 아래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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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박정희는 군인으로서 성공하려던 인생이 좌절되고 다시 구미로 돌아 온다.
아직 한국엔 국군이 없었다.

1946년 10월 17일, 해방 후 약 1년이 지났을 무렵 경상남도 마산 남성동 제일은행 앞에 모여든 민중들 앞에서 있었던 한 여성의 연설을 들어보자.

"해방이 되고나서도 달라진 게 뭐가 있습니까.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미군에 아첨하여 경찰과 행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서 인민의 정치적 자유를 빼앗고 있으며, 가혹한 식량공출과 차별적인 식량배급으로 농민과 도시인민은 아사 직전에 있습니다."

해방 후 1년 동안 한국의 사정을 정리해 보자.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있었다.
1945년 8월 16일에 한국 전역의 모든 관공서 및 경찰서에 누구도 출근하지 않았다.
극도의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민중은 질서를 택했고, 그 질서의 한 가운데에 인민자치위원회가 있었다.
인민자치위원회는 제목 그대로 그 지역에 사는 인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잡아 살아 가기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공동체들이다.
2008년에 그 어떤 배후도 없이 스스로 모여든 촛불들을 보면, 인민자치위원회의 성립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악랄했던 친일파들을 솎아 내어 죽여 버린 일도 있었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100건이 넘지 않을 정도였다 하니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집단적 자제력이 얼마만 했는지 짐작할만 하다. (프랑스에서 독일이 물러간 이후 있었던 대대적인 매국노 숙청 작업과 비교해 보면 상황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일제의 한국 강탈기간은 36년,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간은 약 4년이다.)
인민자치위원회는 물론 이후에 여러 단체들이랑 밀접한 관계를 맺는데 이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미군정은 한국의 치안을 담당할 조선경비대를 급조한다.
이 조선경비대를 중심으로 한국에 잔재한 일제세력들이 대거 재기용 되고 덕분에 친일파들의 무사잔존 가능성이 곤고해진다.
미군정은 한국 상황에 무지했고 또한 한국을 그들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데 골몰하였으므로 토지 정비와 같은 한국민들의 시급한 상황 해결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는 사이 재기용된 친일 간부들은 한국민들을 대상으로 가혹한 식량 공출을 시작했고 이는 급속한 식량부족 현상을 낳았으며 이와 함께 전재민과 실업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민중은 아무런 대안 없이 극심한 생활고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 민중은 인민자치위원회와 같은 노동자, 농민의 자주적 조직을 중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해 보려 했으나 미군정은 이들의 자치권을 전면 부정했다.
그에 대한 민중의 반발은 다시 강압과 폭력으로 대응했으며 이러는 와중에 친일세력은 친미파로 급속하게 진화해 간다.

1946년 10월 경남 마산, 진주 그리고 경북의 대구를 중심으로 민중은 봉기한다.
그들이 외친 소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가혹한 식량 공출에 의한 식량 부족
- 전재민과 실업자의 생활난
- 인민자치위원회 및 시민 단체에 대한 테러와 탄압.
- 친일파 잔존과 재기용
- 조선의 역사에 무지한 미군정의 실정
- 미소공동위원회 결렬으로 인한 통일정부기대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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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민중봉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거의 늘 위의 세가지, 즉 배고픔, 파탄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력과 억압에 의한 희망의 갈취다.
배고프고 무서워도 희망이 있으면 민중은 힘을 모아 헤쳐나간다.
그러나 위기를 모면한 후의 공은 다시 그 위기를 초래한 자들이 모두 긁어 가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불행이요, 이 고리를 끊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민족적 숙제이자 나아가 세계사적 사명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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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당시에 있었던 이 항쟁들을 흔히 우익과 좌익의 격렬한 대립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친미파의 억압에 항거하는 반미파의 투쟁이라는 성격이 더욱 강하다. 다음의 세력 구성을 보면, 당시의 분쟁이 단순한 좌우대립이 아닌 신탁통치를 사이에 놓은 친미/반미의 마찰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성질과  세계사적 상황상 친미에는 우파가 반미에는 좌파가 동참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친미파 :: 한민회, 대동청년단, 서북청년단 등.
반미파 :: 남로당, 전국노동조합평의회, 전국농민조합, 민주주의청년동맹, 부녀총동맹,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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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민회는 남한의 지주들을 중심으로 집결한 모임으로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이승만파의 큰 공조세력이었으나, 이승만의 권력 쟁취 후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자 갈라서 나오게 된다. 한민당은 민주당의 원형으로서, 대한민국에서 민주당이 좌파가 될 수 없는 태생적 원인을 잘 설명해 주며, 그러한 민주당에서 분리해 나온 열린우리당의 급속한 수구보수화 역시 단순한 신자유주의와의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는 변명 이전에 그 근원적 속성이라는 묵직한 원인을 갖고 있다.

또한 서북 청년회는, 남한과는 달리 신속하게 토지 정리에 들어간 북한에서 자기 땅의 잇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남하한 북한 지주층과 자본가층이 결속하여 창단한 극우단체다.
이들 중 기독교 자본가들이 많았다. 대한민국 현대사 내내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내려가 피폐한 민중의 삶 속에 희망을 심어 주어 '사람'이라는 국가 존립의 기반을 닦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한국 기독교의 선작용에 먹칠을 하며 세속 권력에 의탁하여 종교권력을 유지하려는 대한민국 어용 기독교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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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민중항쟁 중 여러곳에서 살상이 일어났으나 그 중 가장 심했던 곳은 대구다.
미군,경찰,테러단체 등이 대구에서만 약 300명을 살해했다.
시민은 이들의 무력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저항했다.

이 대구 항쟁의 지도자는 박상희다.
사회주의자이며, 신간회 창립멤버이고, 조선중앙일보 대구지국장이며, 여운형과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인민자치위원회 선산 대표였으며 박정희의 넷째 형이었다.

1946년 10월 대구 항쟁중 박상희가 경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기 약 한 달 전인 9월에 박정희는 일제시대 군인과 경찰들이 우선권을 갖고 있었던 조선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했다.





[참고]
www.sunbi.net
www.2kim.idomin.com/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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